(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다른 사람들은 여기 유품이 단순히 비행기 조각으로만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우리 새끼들 시신 조각으로 보입니다" 25년전인 지난 1982년 2월 5일 대통령 경호작전중인 공군 수송기가 한라산 탐라계곡에 추락하면서 산화한 특전대원 시태일 상사의 어머니 온영애(73.서귀포시 동홍동)씨는 18일 오전 한라산국립공원 관음사관리사무소 충성공원에 마련된 수송기 유품함의 물기를 닦아내다 말고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온씨는 사고 이후 현재까지 매년 2월 5일과 현충일, 국군의 날, 추석, 설이 되면 충성공원을 찾고 있다.
어느덧 할머니가 되어 버린 그녀는 이날도 아들과 함께 산화한 특전대원과 공군 조종요원을 기리는 추모비 앞에 케이크와 빵 등 제물을 올리고 참배했다.
참사 당시 28살이었던 시 상사를 비롯한 제707특수임대대의 대원 47명과 공군 조종요원 6명은 제주를 방문한 전두환 전 대통령 경호를 위한 '봉황새작전'이란 임무를 맡고 공군 C-123수송기에 탑승해 제주로 날아왔으나 악천후로 수송기가 추락해 모두 숨졌다.
당시 수송기가 추락하면서 대원들이 지니고 있던 수류탄과 폭약들도 함께 폭발해 형체를 알아 볼 수 있는 시신이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합동수색대가 눈 쌓인 사고 현장을 수습하긴 했지만 잔해와 유품을 완벽하게 수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온씨는 청천벽력 같은 둘째 아들 시 상사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사고 전날 저녁 평소와 달리 '엄마, 보고 싶어 전화했어'라며 어리광을 부렸었는데 '침투훈련중 사망'이라니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사고는 사실로 밝혀졌고 얼마뒤 사고 현장을 찾은 그녀는 눈 속에서 채 수습되지 않고 남아 있던 군화를 신은 다리와 시계를 끼고 있는 팔, 옷 조각 등을 수거하고 내려와 화장한 뒤 현재의 충성공원에 묻었다.
온씨는 "현장을 처음 본 순간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피가 얼어 붙는 것 같았다"며 "자식들 시신 조각이 짐승밥은 안되게 해야 할 것 아니냐는 생각으로 정신없이 잔해를 수습해 갖고 내려왔다"고 회상했다.
당시 교통부에 근무하던 그녀는 추모비가 세워질 때까지 5∼6차례 더 현장을 찾았으며 1986년 3월에는 직장을 그만 두고 가족들도 남겨둔 채 아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제주로 내려와 서귀포시의 한 호텔에서 10년간 일했다.
온씨는 1년 뒤 제주로 내려왔던 남편이 지난 1994년 세상을 뜨고 나서 현재까지 혼자서 생활하고 있지만 매 때마다 충성공원을 찾아 참배한 뒤 손수 만든 음식을 들고 인근의 특전사 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특전사 장병들은 또 그런 온씨를 부대로 초청해 환갑잔치를 베풀고 백내장 수술비도 마련해 주는 등 그녀를 어머니처럼 모시고 있다.
특전사는 제주에서 훈련을 하는 특전대원들이 25년간 틈틈이 사고 현장에서 찾아낸 수송기 잔해를 모아 지난달 충성공원내에 유품함도 만들고 조금만 수송기 모델도 갔다 놓아 이곳을 찾는 등반객들에게 산화한 장병들의 넋을 기릴 수 있도록 했다.
제주에 훈련을 오는 특전사 부대들은 항상 충성공원을 찾아 신고식을 겸한 추모행사를 갖는가 하면 현충일이나 국군의 날은 물론, 명절 때에도 빠짐없이 참배하고 있다.
함께 산화한 대원 모두가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온씨는 성당 미사때마다 적어내는 추모 대상자 명단에 아들 이름 대신 '53명 일동'이라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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